이상에서 살펴본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가장 괄목할 만한 획기적인 사상임에 틀림없다. 세기말적인 정서와 근대성에 대한 전면적
회의는 친화력을 가지고 확산되었으며 그 영향력의 범위는 심리학과 심리치료분야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여 심리치료 통합연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포스트모던적 사상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조류는 크게 두 갈래로 요약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맥락주의자(Contextualist)들이고 나머지는 다원주의자(Pluralist)들이다. 심리치료 통합연구에 있어서도 이들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통합(Integration)주의자들이고 후자는 절충주의(Ecleticism)자들이다.
여기서
잠깐 '심리치료 통합'이라는 말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둘 이상의 이론이나 기법들을 통합하거나 절충하는 심리치료의 기법을 나는
'심리치료 통합'이라는 용어로 사용해 왔는데 엄밀히 말해서 통합(Integration)과 절충주의(Ecleticism)는 차이가 있다. 둘
이상의 기법이나 이론을 통합 혹은 절충한다는 의미에서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지만 통합은 어떠한 경우에도 기본적인 이론을 취하게 된다. 반면에
절충주의는 기본적인 이론을 취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인지치료와 행동치료가 인지-행동치료가 되었는데 이것은 '인지-행동치료 이론'이라는 또다른
치료이론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통합이다. 반면에 내담자의 특성이나 행동특성에 따라 그때 그때 알맞는 이론이나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절충주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심리치료 통합'이라는 용어를 '통합'과 '절충'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이유는 현재 심리치료 통합과 절충을 연구하는
가장 중심적인 단체인 미국의 심리치료 통합 연구단체인 SEPI(Society for the Exploration of Psychotherapy
Integration)에서 이들을 '심리치료 통합'이라는 용어로 함께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조차 통합과 절충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며 적당한 경계선을 짓지 못하고 헷갈려 하는 것 같은데 이제 여러분들은 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또한 지금은 종합적인 설명을
하기 때문에 다소 중복되는 용어들이 나와 혼란스러울줄 모르나 이들 모형들은 각기 다른 용어들로 불리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다지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심리치료 통합에 있어서 맥락주의자들은 다양한 치료이론들로부터 그들이 통합하려고 하는 기법들을 언어적,
이론적, 이념적으로 재 구성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치료기법들은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는 치료형태가 된다.
반대로
다원주의자들은 어떤 단일의 이론이나 인식론, 방법론도 거부한다. 따라서 언제든지 그들의 치료기법은 바뀔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우선 맥락주의란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의 기초인 기계론적 모델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기계론적
모델이란 모든 복잡한 계에서 그 전체의 속성은 완전히 그 부분의 성질로부터 이해되어질 수있다는 데카르트 패러다임의 핵심이었다. 이것은 많은
찬양을 받은 데카르트의 분석적 사고방식이었고, 현대 과학 사상의 본질적인 특성이었다. 분석적, 혹은 환원주의적 접근에서는 부분들 그 자체도
그들을 좀 더 작은 부분으로 환원시키지 않고서는 더 이상 분석되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상, 서구 과학은 그러한 방식으로 발전되어져 왔고,
각각의 단계마다 더 이상은 분석되어질 수 없는 수준의 기본적 요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20세기 과학의 가장 큰 충격은
살아있는 모든 시스템은, 그것이 유기체든, 사회 시스템이든, 생태 시스템이든간에 분석에 의해서 이해되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분이 가지는
특성은 그들 고유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보다 큰 전체와의 맥락안에서만 이해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분과 전체간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이라 부르는데 과학자들은 그것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비선형 역동적 체계이론(nonlinear dynamic systems theory), 비선형 열역학(nonequilibrium
thermodynamics), 자기조직화이론 (theory of self- organi- zation), 파국이론(catastrophe
theory), 카오스 이론(chaos theory), 네트워크 역학(network dynamics), 자기갱신적 네트워크(autopoietic
network)등이 이러한 핵심 개념의 일부를 이룬다.
아무튼 시스템이란 부분간의 관계로부터 나타나는 통합된 전체의 본질적
특성을 의미하게 되었고, 시스템적 사고방식이란 현상을 좀 더 큰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상 그리스어
synhistanai(한데로 모아놓다)라는 언어에서 파생되어진 "시스템"이란 용어의 본질적인 의미였다. 사물들을 시스템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것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서 그들간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스템적 접근법에서는 부분의 특성은 오로지 전체의 조직화로부터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시스템적 사고는 기본 구성 성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화의 기본 원리에 초점을 둔다. 시스템적 사고는 분석적 사고와는 반대로 "맥락에 의한(contextual)" 사고이다.
분석이란 어떠한 것을 이해하기위해서 그것을 차례로 분리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적 사고란 그것을 보다 큰 전체의 맥락속으로 모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심리적 기능도 예외가 아니다. 기계론자들은 물리학과 화학의 메커니즘을 참조하면 인간의 심리적 기능이 이해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심리적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때도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인 기본적, 요소적 단위로 단순화시켜서 분석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환원주의적 가정은 우리가 물리적, 기계적 체계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적어도 원칙적으로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수준의 자연현상이 기본적인 물리-화학적 수준의 현상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한 법칙은 모든 수준의 현상에 계속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수준간의 차이는 질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양적으로만 차이가 있다.
이와같은 기계론적
입장은 인간에 대한 빈-유기체 모델을 생성하였고 행동주의 이론으로 표현되었다. 이 이론은 조건화 법칙에 의해 세계가 통제되며 모든 행동은
자극(S)-반응(R)관계의 기본적 법칙으로 환원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기계는 외부의 에너지가 그것을 활성화할 때까지 수동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환경자극이 행동하도록 야기시킬 때까지 또한 수동적이다. 그러므로 환경은 인간행동을 형성하는 근원이다.
기계론적 입장에서의 발달적 변화는 행동 레퍼토리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며 조건화 과정에 의해 행동적 레퍼토리가 덧붙여지거나 감소되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인간은 전생애 동안 질적으로 동일한 행동단위를 지니며 단지 행동 레퍼토리의 양에서만 변화가 있을 뿐이다. 이와같이 환원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기계론적 모델은, 질적 변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우리의 현재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한 과거의 그 시기는
더 이른 시기에서 예측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요약하면 기계론적 모델은 요소주의적ㆍ환원주의적 모델로서 인간기능은 그것의
핵심적 구성요소로 환원되고 이 요소들의 기능을 지배하는 법칙은 삶에 걸쳐 연속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조망내에서는 진정한 질적
불연속성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새로움도 없고 출현도 없고 점성성도 없고 단지 양적 차이만 존재할 뿐이며 인간발달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것은
유기체의 레퍼토리 속의 S-R 연결의 수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계론적 주장과는 다르게 인간발달의 각 수준에서 질적으로 상이한 새로운 특성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특성은 더 낮은 기본적 수준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므로 더 작은, 기존의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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