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 '미술치료', '무용치료' 와 같은 말을 들으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몰라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언뜻 들으면 음치와 같은 사람을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음악치료이고, 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미술치료요, 무용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무용치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 치료는 음악이나 미술 그리고 무용을 가르키는
곳이 아니라 그러한 도구를 이용하여 마음을 치료하는 심리치료의 일종이다. 이들 세 치료를 가리켜 흔히 '예술 치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럼
우선 미술치료부터 간단히 소개하기로 하자.
어느 한 상담자나 치료자가 미술치료의 도입에 공헌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미술치료란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행하고 있는 것을 광법위하게 설명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1940년대 초반
Naumberg는 미술을 분석적이고, 역동적인 심리치료의 한 도구로 소개하였다. Naumberg의 미술치료는 환자의 표현을 통해 무의식세계를
방출시키는데 역점을 두는 '치료'를 강조한다. 따라서 치료는 환자와 치료자간의 전이관계의 발달, 미술재료를 통해 '자유연상'하는 환자의 능력,
그리고 환자와 치료자간의 '상징적 대화'를 이루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환자의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미술치료란 다른 방법의 보조적 치료법이
아니라, 기초적인 치료방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Naumberg는 환자의 치료에서 미술재료를 창의적으로 적용시키는 데 관심을 가진 잘 훈련된
심리치료사라면 누구나 미술치료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50년대 Kramer는 미술과정이 가지는 내재적인 치료의 기능을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미술활동과 작품이 전체적인 치료환경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는 그런 분위기를 통해 집단치료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술치료에
미친 Kramer의 영향력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까지 강하게 계속 남아 있었다.
울만(Ulman)은 크래머와 거의 같은
시대에 미술치료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미술작가로 활동해온 울만은 1950년대 초반 정신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미술치료사가 아닌 미술교사의
자세로 일했다. 울만은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할 때 많은 환자들이 그들의 그림에 내포된 상징적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그들의 창작활동 그 자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울만은 '그림을 치료의 매체로 이용(Art in therapy)'하는
것과 '창작활동 그 자체가 치료(Art as therapy)' 란 용어를 다 포함하는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울만은
미술치료 실행에 있어서 두 측면의 타당성을 인정했다. 'Art in Therapy'와 'Art as therapy'는 같은 시점에 같은 방에
있는 두 측면이거나 다른 시기에 같은 치료자가 일을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임상가로서 울만은 'Art as therapy'를 사용하는 것에서는
'Art in therapy'를 사용했고, 'Art in therapy'가 통하는 곳에서는 'Art as therapy'를 사용해서 이 둘간에
서로 융통성 있는 선택을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술치료계에는 몇 가지 변화가 이루어졌다. Kwiatkowska는
Kramer의 집단치료원리를 확장하여 미술치료를 가족간의 역동적 심리관계가 일차적으로 강조되는 가족집단치료에까지 응용시켰다.
Rhyne(1973) 또한 미술을 '정상적'인 집단에 적용시켜 삶을 풍부하고 폭넓게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하는 원리를
소개하였다.
현재 미술치료는 미술과 치료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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