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살펴보았던 프로이드, 에릭슨, 그리고 피아제는 인간의
발달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며, 어떤 행동은
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구조가 형성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고 주장하여 발달의 단계성을
강조한 반면, 학습이론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어떤
특정 단계에 이르러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훈련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학습이론에서 주장하는 여러 가지 원리들은
실제 우리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사탕을 주고,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위인전'을 사주는 부모의 행동은
학습이론의 원리 중 '강화'와 '모델링'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젊은 엄마들이나 교사들이 많이 쓰는
방법으로 바람직한 일을 했을 때마다 스티커를 주고,
스티커가 일정수준으로 모아졌으면 이에 상응하는 선물을
주는 것도 '토큰 경제'라는 학습이론의 한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학습이론에서 주장하는 원리들은 타 이론들에
비해 비교적 쉽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널리 이용되어왔다. 유명한
학습이론가로서는 파블로프, 왓슨, 스키너, 그리고
벤두라를 들 수 있다.
(1)
파블로프와 왓슨의 실험 : 고전적 조건형성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다 경험했을 일로써, 개에게 밥을
줄 때마다 그 신호로 개 밥그릇을 탁탁 쳐서 소리를
내었다면, 언제부터인가 개는 그 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리며 헐레벌떡 달려온다. 처음부터 밥그릇만 보고
침을 흘리는 개는 없다. 하지만 음식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침을 흘리게 된다. 반사작용을 유발하는 음식을 일정
밥그릇에 담아주게 되면 개는 그릇만 보고도 침을 흘리는
반사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반사작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자극을 반사작용과
연관있도록 '조건형성'을 시켜 음식물이라는 자극이
없을 때에도 반사작용을 유발케하는 것을 '고전적 조건형성'이라
부르며, 이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이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이다.
이러한
'고전적 조건형성'의 원리는 비단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데, 이러한
원리를 유아에게 적용시켜 연구한 사람이 왓슨이다.
왓슨이 '알버트'라는 유아에게 행한 공포실험은
매우 유명한 실험인 동시에 비인간성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왓슨은
앨버트라는 11개월된 유아에게 희고 털이 많은 쥐를
두려워하도록 조건 형성시킨 실험을 실시하였다. 앨버트는
처음에는 흰 쥐에 대해서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않았으나,
앨버트가 쥐를 만지려 할 때마다 왓슨은 큰 징을 울렸다.
아기는 그 소리에 너무나 놀라 급기야는 쥐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희고 털이 난 다른 대상에게도
일반화된 공포를 보였다. 그래서 앨버트는 산타클로스의
수염조차도 무서워하게 되었으며, 모피 코트나 털목도리
등에도 공포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왓슨은 다시 '고전적
조건형성'을 통해 공포반응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장담했으나 고아였던 '앨버트'의 거주지가 옮겨지면서
그 실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왓슨은
아동들이 자라면서 보이는 많은 정서적 반응은 이러한
'고전적 조건형성'을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 '고전적
조건형성'을 통해 발생한 정서적 반응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기를 잘
대해준다면 아기는 기분 좋은 정서를 느끼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부모의 존재만으로도 긍정적인 정서를 느끼게
된다. 반면 형이 자신을 귀찮게 할 때 불편하고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게 될 것이고, 후에는 형의 존재만으로도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치료하는 아동 중에
어려서 할머니에게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아이가 있는
데, 그 할머니는 매우 뚱뚱한 사람이었다. 뚱뚱한 것
자체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시킨 것은 아니지만,
뚱뚱한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 경험한 부정적 느낌
때문에 현재는 뚱뚱한 것에 대해 혐오감과 두려움을
나타내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살찌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일
자녀가 어른을 지나치게 어려워하고 겁을 먹는다면,
왓슨의 이론을 빌리자면 그 아이의 소심성 때문이기보다는
성장과정에서 그러한 반응을 하도록 학습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 학습이론은 이처럼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것이 적응적인 행동이든 부적응적인 것이든
간에 모두 '학습'된 것으로 본다. 그런면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 이론이다.
*
자신의 이론을 현장에 적용해 성공한 왓슨
대부분의
연구자들이나 이론가들이 학자로서 알려져 있지만 왓슨은
학자로서보다 광고인으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왓슨은
1878년에 남 캐롤라이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충실한 기독교인이었으나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여성편력이 심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왓슨도 여자관계가 순탄치 만은 못했다. 그는
대학시절에 만난 여자와 결혼해 두 명의 자녀까지 두었는데
역시 수많은 여자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결국 그도
이혼하고 다시 재혼했는데 그 부인은 다름 아닌 그가
존 홉킨스 대학 교수로 재직할 당시 그의 조교로 일했던
레이너 (Rosalie Rayner)라는 자신의 제자였다.
왓슨이
대학을 사임하게 된 동기도 결국 자신의 제자와의 추문때문이었는데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오히려 전환기가 된 셈이다.
그는 자신의 과학적 이론을 현장에 직접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인데 이 때문에 그는 승승장구해서 1924년에는
광고회사(J Walter Thompson Agency)의 부사장직까지
오르게 된다. 결국 그의 이론이 현실적 적용에 성공했다는
증거이다.
(2)
스키너 : 조작적 조건형성
파블로프나
왓슨이 '반사적 행동의 조건형성'을 연구한 것이라면
스키너는 반사적 반응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임의로
조작하는 행동으로 이루어진 조건형성을 연구했다.
몇
년 전에 토끼를 키운 적이 있는 데, 토끼집 한 편에
빨대가 담긴 물통이 달려있었다. 토끼가 목이 마를
때마다 그곳으로 가서 빨대 끝을 자극해 물을 먹는
것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그
것이 물이 담긴 통이라는 것 알았을까? 또 먹는 방법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아마 처음에 토끼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번 그 빨대 끝을 건드려 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물이 나왔을 것이고, 그 물을 먹어본
토끼는 목이 마를 때 그 통앞으로 가서 다시 그 행동을
해보았을 것이다. 만일 그 통에서 매우 쓴맛의 액체가
나왔다면 토끼는 그 곳에 가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 통에서 나온 것이 토끼에게는 괜찮은 것, 또는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행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와같이
유기체가 스스로 어떤 반응을 하게 되며 그 반응이
긍정적인 결과, 즉 보상을 가져오게 되면 나중에도
그와 같은 반응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조작적
조건형성'이다. 동물원에서 하는 물개쇼, 돌고래쇼,
원숭이쇼 등이 이러한 '조작적 조건형성'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돌고래가 훌라후프를 통과한 후
조련사로부터 싱싱한 생선 한 마리를 받아먹는 것을
대부분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조작적 조건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보상'이다. 어떤 행위를 했을 때에
보상이 뒤따르면 그 행위는 반복되어질 가능성이 짙어지며,
이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화되고 습관화되면 학습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스키너의
말을 빌면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 또한 보상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보상'은 그
개념이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할
때에 여러 가지 오해와 시비를 낳게 된다. 배고픈 아이에게는
음식이 보상이요, 사랑에 굶주린 아이에게는 애정이
보상이요, 짝을 원하는 생물에게는 그 짝이 보상이
된다. 그 밖에도 보상의 종류로는 금전, 지위, 명예,
권력, 자기 만족 따위가 있다. 보상은 학습이론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면 '강화'가 된다. 강화는 긍정적 강화와
부정적 강화, 2 종류가 있다. 긍정적 강화물에 해당하는
것은 칭찬, 미소, 먹을 것, 안아주기, 관심 가져주기가
해당된다. 부정적 강화는 불유쾌한 자극을 피하거나
멈추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는 부정적 강화의 예는 아이가 계속 칭얼대고
보챌 때 엄마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는 것이다.
이때 엄마의 안아주는 행동은 부정적 강화물이 된다.
동시에 아이에게는 자신이 울었을 때 엄마가 관심을
가져주었으므로, '엄마의 관심'은 긍정적 강화물이
되어 앞으로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을 때 칭얼대거나
보채는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
부정적
강화와 종종 혼동되는 것이 '벌'이다. 강화는 우리가
바라는 행동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면
벌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약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어떤 벌은 특권 박탈(예를 들어 TV시청, 컴퓨터 사용
금지, 외출 금지)의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야단치거나
꾸짖는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하지만 벌을 사용했을
때 항상 우리가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벌을 받은 사람에게 심리적 상처를 준다는 큰 약점을
갖고 있다. 또한 벌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점점 더
강도를 높여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이다. 또한
벌은 원래 목적과는 달리 '긍정적 강화'의 역할로 변신하기도
하는 데, 예를 들어 훔치는 행동으로 인해 부모에게
야단을 맞지만, 이 야단을 통해 아이는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여 훔치는 행동을 계속 할
수 있다.
(4)
벤두라의 모방학습
고전적
조건형성이나 조작적 조건형성 모두 유기체가 직접
행동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학습이지만, 벤두라는 직접
행동하지 않아도 사회적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행동을 학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대표적인 모방학습의 예가 텔레비전의
영향이다. 공격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본 아이들이 실제적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더 많이 보인다고 한다. 또한 형제수가
많은 가정에서 막내들이 눈치가 빠르고 야단을 덜 맞는
경우가 많은 데, 이는 손윗 형제들이 부모에게 야단맞거나
칭찬받을 때를 보면서 간접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모방학습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옛말이 절로
생각난다. 부모가 모범을 보이고, 긍정적이고 적응적인
행동 모델이 될 때 자녀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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