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 DNA)은 생물체에 매우 중요한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DNA란 물질은 독일의 튜빙겐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25세의 젊은 스위스인 미셔(Johann Friedrich Miescher,
1844-1895)가 1869년에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미셔는 박테리아 이외에 진핵세포에 있는 세포핵에 화학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는 상처의 고름에 들어 있는 백혈구의 핵을 연구에 사용하였다. 백혈구의 핵은 비교적 크지만 그는 매우 어렵게 이것을 세포질로부터
분리하였다. 1869년말에 세포의 핵을 분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핵을 분석하였다. 핵 속에는 당시에 알려져 있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라는
세포질성분과는 다른 복잡한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편 1880년에 독일의 생리화학자 코셀(Albrecht
Kossel, 1853-1927)은 세포핵물질의 주성분이 핵단백질이라는 것을 밝혀 냈으며, 아지닌(arginine)과
히스티딘(histidine)도 발견하였다. 그는 1910년에 프로타민(protamine)과 히스톤(histone)의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아데닌(adenine), 구아닌(guanine), 시토신(cytosine), 티민(thymine), 우라실(uracil)의
5종의 염기를 발견하고 이들을 명명하였다.
1889년에 미셔의 제자였던 알트만(Richard Altmann,
1852-1900)은 뉴클레인이 염기, 인산 및 당으로 이루어진 DNA와 단백질의 복합체라는 것을 밝혀내고, 염기와 인산 및 당만을 포함하는
물질을 뉴클레인과 구별하기 위하여 핵산(nucleic acid)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였다. 즉 DNA만을 따로 분리한 것이다. 이 화합물은
4개의 탄소와 1개의 산소가 고리를 만드는 당-리보스와 4개의 산소원자에 둘러싸인 인산기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거대분자이다.
미셔가 폐결핵으로 죽기 3년전 숙부에게 보낸 편지에는 생물체를 구성하는 거대분자들은 같은 구조의 작은 분자들이 많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이런 거대한 분자는 단어나 문장이 모두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유전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미셔는
자신이 발견한 물질이 중요한 유전물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의 생화학자들은 DNA보다는 단백질이 보다 중요한 물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셔가 DNA를 발견한 이후로 70년 동안 DNA가 유전물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참고 자료] www.iloved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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