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기능 자폐증(High Functioning Autism)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뉴턴이나 빌게이츠까지 고기능 자폐증이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고기능 자폐증이었는지
어땠는지 알길은 없으나 아무튼 '고기능'이라는 말을 확대
해석해서 '천재'나 '영재'의 의미로 받아들여진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요즘은 저희 상담센터에도 자신이 고기능 자폐증이 아닌지
문의하는 성인들도 있습니다.
고기능
자폐증이라는 용어는 자폐증을 최초로 보고한 카너의 저기능
자폐증과 다른 행동특성을 보고한 아스퍼거 증후군이 발표된
후입니다. 하지만 고기능 자폐증과 아스퍼거 증후군의 정의가
확실히 표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마다 다른 해석을
한다는데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폐증에
있어서 '고기능'이라는 말은 지능지수 70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말입니다. 즉, 전형적인 자폐증의 경우 대부분 정신지체수준의
지능을 나타내는데 정신지체수준의 지능을 보이지 않는
자폐증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의미이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천재나 영재의 개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용어입니다. 예를들면
지능지수 70대의 자폐증아는 정의상 고기능 자폐증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능지수 70대라면 일반아이도
일반학교에서 학습과정을 따라가기 힘든 상황인데 지능지수
70대의 자폐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능지수
71부터 84까지를 '경계선 지적기능'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아이들의 경우 일반학교의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고기능'이란 '정신지체'가 아니라는 의미이지 지능이
매우 높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해 두셔야 합니다.
물론 지능지수가 120대나 130대 이상의 자폐증도 보고되고는
있지만 지능지수가 높다고 해서 문제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특별한 배려가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고기능
자폐증도 자폐적 특성을 똑같이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고기능 광범위성 발달장애 등등 전문가들마다
다양하게 그 용어를 선택해 부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원조수단이나 치료교육적 시스템에 관해 논할 때는 이들
용어는 일괄적으로 동의어로 보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국제적 진단기준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기준이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DSM-Ⅳ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하는 국제질병분류표 ICD-10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0th Version)가
있는데 그동안 서로 다른 진단명이나 진단기준을 사용하다가
DSM-Ⅳ와 ICD-10에서 많은 통일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미묘하게 다른 표현들이 있어 많은
혼란을 초래합니다. 예를들면 DSM-Ⅳ에서는 '자폐성장애'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ICD-10에서는 '소아자폐증'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또한 양쪽의 진단기준에서 '광밤위성 발달장애(PDD)'라는
용어로 광의의 자폐적인 발달장애를 표현하고 있지만 DSM-Ⅳ에서는
'별도로 분류되지 않는 광범위성 발달장애(PDDNOS)라는
진단 카테고리가 있어 자폐증과 어떻게 다른지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보호자나 교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폐증은
심각한 장애이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은 보통 학급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거나 '자폐증이 아니라 광범위성 발달장애이기
때문에 노력하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DSM-Ⅳ나
ICD-10이나 아스퍼거 증후군은 광범위성 발달장애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국제적 진단기준의 정의는 임상적으로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심각한 언어발달 지연이 없을 것(단음절
단어를 2세에 사용하고 의사소통을 위한 구를 3세에 사용한다),
그리고 인지발달이나 적응의 행동발달, 호기심발달에 있어서
임상적으로 명확한 심각한 지연이 없을 것' 등을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임상경험에서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면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즉,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도 2.
3세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인지나 언어발달상의 지연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경우 자폐성장애로 진단을 받거나 자폐성향,
혹은 유사자폐로 진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고기능이냐 아니냐 보다는 자폐 스펙트럼이냐 아니냐
하는 진단쪽이 임상적으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Q70 이상이라는 기준으로 고기능이냐 저기능이냐를
논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기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문제점으로서 필요한
사회적 원조를 받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없는 문제점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 원조라는
시점에서는 아이큐가 지체영역이 아니면 장애로서 인정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없는 문제점으로서
이들은 종종 '정상'이나 혹은 '가정교육문제' 등으로
인식되기 쉽상입니다. 이들은 겉으로 보아서는 발달상의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전문기관을 찾아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고기능에 관한 적절한 진단이 내려질 수 있도록
전문가의 양성, 치료환경의 정비, 부모나 학교교사들의
인식변화, 그리고 지적인 장애가 없어도 자폐증으로서의
원조를 얻을 수 있는 복지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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