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은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특수
공포증, 혹은 단순 공포증이라고도 합니다. 특정공포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을 두려워하여 피하는 것으로 대개 동물이나, 높은 곳, 천둥, 어둠, 비행, 폐쇄 공간, 특정 음식물 섭취, 피나 상처를 보는 것,
주사를 맞는 것 등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공포증에 대한 자료를
거의 망라하고 있는 포비아리스트(http://www.phobialist.com)에
가보면 아마도 그 수에 공포를 느낄 정도입니다. 이러한
공포증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공포의 대상도 변하게
되는데 예전의 악마공포증이 사라지고 방사능 공포증이나 AIDS, 성병, 환경오염 등 과거에 없던 공포의 대상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이들
특정공포증은 그 유형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도
합니다. 1) 동물형: 파충류, 쥐, 벌레, 고양이, 개, 곤충에
대한 공포 2) 자연환경형: 폭풍, 높은 곳, 물과 같은 자연환경에 대한 공포 3)
혈액-주사-손상형: 피를 보거나
주사를 맞거나 기타 찌르는 검사에 대한 공포 4) 상황형: 공중교통수단, 터널, 다리, 엘리베이터, 운전, 또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공포 5)기타
공포 대상이 동물이나 곤충인 동물형 공포증은 다른 공포증에 비해 일찍 시작돼 대체로 아동기에 발병합니다. 인지발달 단계상 아동이 동물이나
곤충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지만 공포증이 매우 강렬하고 아동의 일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거나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이런 두려움은 공포증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또한 천둥이나 번개, 물, 높은 장소 등 자연환경이 공포 대상인 자연환경형 공포증도 동물형 공포증과 마찬가지로 아동기에
발병하고, 상황형 공포증은 대중교통이나 터널, 교각, 엘리베이터, 비행, 운전, 폐쇄된 공간 등 특수상황에 의해 유발되는데 주로 아동기와
20대 중반 두 시기에 나타납니다. 상황형 공포증은 공황장애 등 심리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액-주사-상해형 공포증은 혈액이나 부상을 보거나 주사 등 의학적 처치를 받을 때 나타납니다. 간혹 기절하거나 기절 직전의 경험도 합니다.
때문에 이 공포증 환자는 의사를 피하려 애쓰고 반드시 필요한 의학적 조치마저 피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공포증을 예전에는 개인의 성격탓으로 돌렸습니다. 실생활에 지장이 초래될 만큼 적잖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공포증 환자는 홀로 고민에 빠져야 했습니다. 남에게 털어놔봐야 이상한
성격을 지녔다는 인식만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정 공포증을 공포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기도
하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들만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동물공포(Zoophobia)
- 특정 동물(예 : 개, 뱀, 거미)을 두려워 하는 경우
- 폐쇄공포(Claustrophobia)
- 폐쇄된 공간(예 :
엘리베이터, 터널)을 두려워하는 경우
- 고소공포(Acrophobia)
-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경우
- 물공포(Aquaphobia)
- 물을 두려워 하는 경우
- 질병공포(Nosophobia)
- AIDS와 같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 불결공포(Mysophobia)
- 지저분한 것에 대한 두려움
- 시험공포(Examination phobia)
- 시험보는 상황을 지나치게 두려워 하는
경우
이처럼
두려워 피하는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상황이나 대상에 접하게 되면 광장공포증이나
사회공포증에서와 마찬가지로 공황발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나 상황이 평상시에 흔히 접하는 것이 아니거나 두려워 하는 정도가 경미하면 공포증이 환자의 직업이나 사회활동, 기타 다른 일반적인 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것, 예를 들면 '물'에 대한 공포증의 경우 목욕이나 샤워는 물론
이를 닦는 일마저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특정 공포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미국이 우리보다 많습니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내놓은 특정공포증 진단기준표(DSM-Ⅳ)에 따르면, 미국 국민
가운데 10∼11.3%가 특정공포증을 보인다고 합니다. 열 명 중 한 명꼴입니다. 1986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제시한 DSM-Ⅲ에 따라 역학조사가 실시 된
한국에서는 100명 가운데 다섯 명꼴로 증상을 보였는데 서울 인구(5.35%)가 지방 인구(4.67%)보다 더 많은 공포증 증세를 보인 점이
특이합니다. 이 조사결과가 거의 20년 전에 실시된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은 특정공포증 환자가 더 늘어났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추측입니다. 이러한
공포증은 구체적이고 갑작스런 위험에 대한 반응인 공포와는
전혀 다릅니다. 공포는 위험이 항상 미래에 일어나기에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같은 공포는 일상적이고 피하기 어려운 생활의 일부분입니다.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는 공포가 합리적이고 적절한 반응인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공포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인간이 그 옛날 원시시대에 살아남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들이란
원시시대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본능들이었습니다. 예를들면 놀랐을 때 눈썹이 올라가는 것은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망막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한 기능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현재 진행중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최상의 행동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한 두가지 상황에 대해서는 누구나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비행기 사고가 언론에 대서특필된 날 누구나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어느 정도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비행기를 타지 못할 만큼 강하지는 않습니다. 비행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비행기로 몇 시간에 갈 거리를 자동차로
며칠씩 운전해서 간다든가, 아예
갈 생각을 포기할 정도로 심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무리 큰 비행기 사고라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공포나 불안감이 사라지기 마련인데
비행공포증 환자는 좀처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으며 비행기가 안전하다는 정보에도 아랑곳없이 공포감이 좀처럼 줄어 들지 않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못해 위독한 부모를 찾아 뵙지 못하거나 좋은 일자리를 제안받아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공포의 범위를 벗어난 겁니다. 과학은 공포증을 진화론의 산물로 해석합니다. 원시시대엔 공룡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강할수록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고 이같은
기억은 진화과정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인간의 대뇌 속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과학자들은 공포증 대상 가운데 뱀·악어 등 파충류가 유독
많다는 점을 그 증거로 내세웁니다. 보호본능은 자동차 사고 등 문명의 이기에서 비롯된 각종 사고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도 구현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서 <특정 공포증>의 저자 김지훈씨에 의하면 “여러 문헌에 따르면, 유명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계단
공포증에 시달렸고, 시저는
어둠 공포증이 있었으며 세익스피어는 고양이 공포증을, 파스칼은 광장 공포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위대한 사람들이 공포증에 시달렸다는
사실만 보아도 공포증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대변해준다고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