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재빨리 자기 방으로 달아나는 아이, 학교나 가족끼리 단체 사진을 찍어도 항상 얼굴도 보이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인 채 있는 아이, 친구들과 큰소리로 얘기도 못하고 손가락을 입에 넣기도 하며 상대방의 눈을 보지 못하고 딴 짓을 하는 아이, 심지어는 유치원 버스를 탈 때도 늘 혼자 앉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이나 낯선 사람을 만나면 수줍음을 많이 타 뒤로 물러서며 부모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낯선 것이면 사람이든 장소든 물건이든 모두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스스로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게 한다. 아이를 좀더 적극적인 성격으로 고쳐주려고 태권도도 보내고 일부러 단체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려하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민족은 마을 공동체라는 의식이 강해 주로 집단생활을 해왔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상이 강하다. 그런데 급격한 사회의 변화로 이러한 문화가 붕괴되고 서구문화가 보편화되면서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일반화되었다. 이러다보니 사람과의 접촉이 어렵게 되고 아이들은 거의 혼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큰 요인은 역시 사람과의 접촉부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친구를 대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연습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처음 만나는 아이에게 말 거는 법으로는 날씨이야기, 자기 이름과 학교 소개, 상대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어른에게 인사하는 법, 물건 살 때, 실수했을 때 등의 상황에 적합한 표현을 만들어 연습시킨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상황을 조심하여 위에서 연습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실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미리 연습을 했다는 것이 아이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게 되어 부끄럼을 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변화도 커다란 요인이지만 사실 부모를 닮아 그런 경우도 많다. 따라서 아이가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소극적이라고 애태우기 전에 부모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유전이니 어쩔 수 없다며 자기 가슴만치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바로 부모의 그런 경험담이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어떨까? "엄마도 어렸을 때, 너처럼 그랬단다. 그런데 멋진 인형을 가진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 인형이 너무 예뻐서 한 번 만져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어. 다른 친구들은 다 한번씩 만져보았는데 엄마는 도저히 친구에게 한 번 만져보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고 연습했단다. 친구에게 인형 한 번 만져보자는 말을 하는 연습 말이야. 그리고 며칠후에 드디어 친구에게 말을 했단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창피하고 자신이 없어서 친구가 엄마 소리를 듣지도 못할 정도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번 그렇게 말해보니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정말이야. 지금 엄마를 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잘하지? 그러니 너도 너무 걱정하지마. 반드시 엄마처럼 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이야기를 아이가 듣는다면 아이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싫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감싸주고 용기를 붙돋워 줄 수 있는 한 마디 말이 아이에게는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부모가 아이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윽박지르거나 면박을 준다면 아이는 더욱 자신감을 잃고 고개를 숙일 것이다. 또한 아직도 여전히 아이와 같이 수줍어서 이웃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는 부모라면 물론 부모부터 변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만나면 먼저 밝은 소리로 인사하고 여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본다. 이웃을 우리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다른 집에 아이를 데리고 놀러도 자주 가다보면 아이는 우리 집, 우리 식구 아닌 다른 사람들, 다른 환경에서도 한결 마음을 놓으며 편안해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부모의 과보호도 문제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아이가 너무 과보호로 자라 소심하고 소극적이 되었다면 부모는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주며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애는 너무 약해서 아직 어려서 또는 너무 느려서 등등 이런저런 핑계 거리를 대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부모가 해주면 심할 경우 부모는 평생 아이 뒤치다꺼리만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부모가 생각하기에 '이건 정말 아이가 할 수 없을 거야'
싶은 것도 한 번 시켜 보는 것이 좋다. 또한 아이에게 자기주장훈련을 시키는 것도 좋다. 자기주장훈련이란 아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나도 할 수 있어"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하는 일이 힘에 겹거나 너무 어려울 때는 그 과제를 작은 단계로 나누어 하기 쉽게 만들어 준 후 하도록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하는 일마다 성공하도록 도와준다면 성공경험을 많이 하게 된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되며, 작은 성공경험들을 바탕으로 해서 여지껏 해보지 않았던 큰 일에도 도전해 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서툴고 어려워할지 모르지만 아이는 어느 틈엔가 해낸다. 이때 부모의 몫은 끊임없는 칭찬과 인내뿐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유치원이나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등의 문제를 보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예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급기야는 공포심마저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사회 공포증’ 혹은 ‘대인 공포증’이라 부르며 이는 ‘정신장애’로 분류된다. 이런 아이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면 홍당무처럼 낯을 붉히거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도 하고,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져 식은땀이 흘리는 등의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이 남을 의식하여 생기는 창피한 감정을 핵심으로 형성되면 이를 사회적 불안이라 한다. 또 특별히 어떤 일을 할 때 긴장과 더불어 관람하는 사람들을 의식하여 창피당할 것을 불안해하면 이를 수행불안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사회적 불안이나 수행불안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남 앞에 나서는 상황을 자꾸만 피하려 하고 그런 상황이 오게 될 것 같으면 미리 이에 대해 심한 예기불안을 가지게 되어 결국 일상생활에 적지 않는 지장을 받게 된다. 이런 상태를 사회공포증 혹은 대인공포증이라 한다. 사회공포증에서 말하는 공포증이란 특정대상이나 상황에 처했을 때, 혹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비현실적인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이 생겨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피해버리는 장애를 말한다. 따라서 사회공포증이란 공공장소나 사회적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보거나 곤란한 일을 당할 때, 혹은 당황스러운 일을 겪게 될 때 두려워해서 회피반응을 보이는 공포장애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유치원 발표회를 하거나 학교 교실에서 친구들 앞에 나가 발표를 할 때 느끼는 공포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사람과 접촉이 예상될 때도 공포심이 느껴지고, 누군가 쳐다보는 상태에서 먹고 마시거나 말하는 상황에서조차 공포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등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어서 그런 상황을 가능한 피하려 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 불안하고 긴장이 되어 얼굴이 붉어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흔히 대인공포증, 무대공포증, 연단공포증이라고도 불리며, 때로는 발표불안, 이성(데이트)불안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예전에 사회공포증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진단범주가 확립되기 전에는 '수줍음'과 사회공포증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자신을 수줍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고 또 연구자들도 '수줍음'이라는 용어가 사회공포증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흔히 사회공포증, 대인공포증이라고 하면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따라서 대개는 성격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숫기가 없다는 식으로 특별한 병으로 생각지 않는 경향이 많으나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받으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수줍음과 사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수줍음이란 비교적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남들 앞에 잘 나서지 않고 소극적이며,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여기에 비하여 사회공포증은 분명한 장애를 의미하는 말이다. 사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순히 수줍음이 많은 사람에 비하여 생활에 지장을 훨씬 더 많이 받고 회피행동을 보다 많이 보인다. 또 다른 차이는 수줍음의 경우 이것을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며 특별한 기준이 없지만, 사회공포증은 명백한 진단준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줍음은 사회공포증보다 여러 종류의 이질적인 사람들을 포함하며, 수줍음이 많은 사람 중에는 사회공포증과 중복되는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사회공포증을 가진 사람 중에는 남들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얼굴과 목, 귀 등이 갑자기 붉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슴에서부터 붉은 얼룩이 서서히 목과 얼굴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될 때만 얼굴이 붉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칭찬을 받을 때나 남들이 생일노래를 불러줄 때와 같은 의외의 관심을 받게 되어 당황하게 될 때에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렇다면 바라지 않던 관심을 받을 때 사람들은 왜 얼굴이 붉어지게 될까? 여기에 대한 확실한 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침팬지나 비비 같은 영장동물들의 행동을 잘 관찰해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침팬지는 지위가 더 높은 침팬지로부터 사회적 위협을 받게 될 때 시선을 피하거나 상대방을 옆으로 비켜 바라보면서 이를 드러내고 쑥스럽게 웃는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위협적인 상대방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유화신호라고 불린다. 침팬지가 유화신호를 보낼 때의 행동들은 사람들이 얼굴을 붉힐 때 보이는 행동과 다음과 같은 점에서 비슷하다. 첫째, 사람들도 얼굴을 붉힐 때는 시선을 돌리고 시선을 계속 맞추지 않는다. 둘째, 얼굴을 붉힐 때 어색한 웃음을 짓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웃음은 당황할 때 거의 자동적으로 나타나 상대방에게 자신이 곤란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때 상대방이 관심을 줄이거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게 된다. 이것은 사람이 왜 얼굴을 붉히는 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불안해하는 것이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약간 불안할 때 우리는 더 정신 집중을 보다 잘하게 되고 실수를 덜 할 수 있게 된다. 사회 생활을 할 때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을 쓴다면 본의 아니게 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우리가 만나고 함께 생활해야 할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대인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이나 불안은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적당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사회 생활에서의 불안이나 긴장이 지나칠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의 원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도록 방해하고, 나아가서는 사회 생활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