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고자 하는 자발적 의욕이 없는 아이,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도 좋다 싫다 별 반응도 없이 자기 혼자 심드렁하게 있는 아이, 행동이 느려 과제를 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신의 감정을 별로 표현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그런다거나, 행동이 느려서 그런다거나, 심지어는 극성맞은 아이들보다 조용하고 차분해서 낫다며 장점으로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특히 매사에 의욕이 없고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면 ‘우울증’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흔히 어른들은 설마 어린 아이들에게 무슨 '우울증' 이 있느냐고 의아해 한다.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의문이 있어왔다. 따라서 주요 우울증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성인에게서만 이루어져 왔었다. 하지만 스피츠(Spitz)라는 사람이 고아원이나 아동보호소에서 엄마의 상실에 의한 심리적 타격으로 밥도 안 먹고 활동도 하지 않는 2-3세 아이들을 관찰하여 연구한 결과 이를 '의존성 우울(anaclitic depression)'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정통 정신분석가들은 우울증이란 지나친 양심에 의한 과도한 죄책감 내지 자기 징벌이 핵심 병리인데 과연 아이들에게 양심, 죄책감 같은 개념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던졌다. 일부 이러한 이론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실제 임상에서 많은 아이들이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아이들에게 우울증이 존재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정 사실이 되었다. 성인의 특징적 우울증상은 절망감, 허무감, 죄책감, 흥미 상실, 성욕 감퇴, 식욕감퇴, 새벽에 일찍 깸, 체중 감소, 전반적 사고-운동 속도가 느려짐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에 아이가 우울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신호들로는 예전에 즐기던 일에 대한 흥미를 잃거나, 쉽게 지치거나, 수면과 식욕이 달라지거나, 집중을 못 하거나, 반항적으로 되거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절망적인 혹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을 들 수 있다. 또한 변화무쌍한 감정을 보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경우는 인지, 사고, 감정 발달이 아직 안되어 절망감, 허무감, 죄책감 같은 우울한 감정보다는 위의 예와 같이 사소한 일에 짜증이나 울음을 터뜨리고 특별한 의학적인 원인이 없이 여기저기 아프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겉으로 보아서는 쉽게 아이의 우울한 감정을 알아내기가 힘들고 아이와의 충분한 대화 후에야 비로소 아이의 마음속에 깔린 우울한 감정을 알아 낼 수 있다. 그래서 일명 소아 우울증을 가면(mask)속에 감추어진 '가면성 우울증 혹은 변장한 우울증(masked depression)' 이라고도 한다. 우울증은 스트레스를 주는 현상과 사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데 작고 큰 충격적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특히 단기간에 연달아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를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자살충동을 느낄 수가 있다. 4세부터 14세까지의 아동은 부모들이 설마 아이들이 자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시기의 우울증은 다른 때보다 더 위험하다. 따라서 우울증과 자살동기에 관한 교사나 부모의 관찰과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슬프고 우울하지만 자살의도가 없는 아동과 자살의도나 충동이 있는 아동을 구별하여 조기에 상담하면 불행을 조기에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가장 민감하고 충격을 받는 것은 부모의 부부싸움이나 이혼과 재혼 등의 가정환경이다. 학교와 관련해서는 외모와 자존심의 문제, 또래간의 인기(따돌림 등)와 압력, 학업성적, 아이의 능력을 넘어선 과도한 숙제나 과제부과, 능력별 집단편성에서 느끼는 무능감, 집단별 경쟁에서 자신 때문에 소속 집단이 패할 경우 등이다. 가정이나 학교, 친구 사이에서의 사건 외에도 심지어 애완동물의 죽음도 자살충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주요 관심사에서 충격을 받을 경우 약물(본드 흡입 등)이나 자살충동이 일어날 수 있다. 아이가 우울증에 걸린 것 같으면 먼저 욕구 충족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부모를 향한 애정욕구가 좌절돼 나타나는 증상은 아닌지, 학교 친구관계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증상이 언제 시작됐고, 그때 무슨 일이 있었으며 부모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파악하면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우울한 아이에게는 어떠한 치료적 효과보다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제일 좋은 치료이다. 아이가 잘 하는 점을 찾아 적극적으로 칭찬해주고 가족간의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면 부모가 자기 마음을 이해해준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불만이나 고민 등을 훨씬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