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이 즐겨 노는 놀이에 끼어서 거친 활동을 하기를 좋아하거나, 혹은 반대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놀이나 소꿉놀이에 끼어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이나 부모들은 남자답지 못한다든가 여자답지 못하다고 걱정한다. 심지어는 가끔씩 연예인들의 화제 거리로 등장하는 호모나 게이를 떠올리는 부모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주로 남매로 자라난 아이들은 남녀 구별 없이 자신이 익숙한 놀이에 참여하게 된다. 즉, 오빠를 둔 여자아이는 남자 친구와의 놀이를 즐기며, 누나가 있는 남자아이는 여자 친구와 노는 놀이에 익숙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질적인 원인도 있다. 기질적으로 활동적인 여자아이는 남녀인식에 구분없이 놀이 자체가 흥미로워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기질의 남자아이는 조용한 놀이에 참여하길 즐기는데, 이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인간의 성별, 즉, 남성과 여성은 외부 생식기에 의해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남성 성기를 가지고 있으면 자신을 남성으로 지각하고 반대로 여성 성기를 가지고 있으면 여성으로 지각한다. 그런데 인간의 성에는 육체적인 역할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역할이 있다. 남자아이는 씩씩하고 용감해야 하며 여자아이는 다소곳하고 얌전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문화의 전통적인 사회 문화적 역할이다. 놀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남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총이나 로봇을 갖고 놀기를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좋아한다. 이러한 성열할이 타고난 것이냐, 2차적인 사회화 과정이냐 하는 것은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즉, 남자아이들은 유전적으로 총이나 로봇을 좋아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있는지 아니면 부모들이 남자아이에게는 총이나 로봇을 많이 사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하는 논쟁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과학적 근거는 없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남녀간에 생물학적 차이를 입증할만한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남녀간의 차이는 생득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환경과의 경험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즉, 남녀간에 성역할이 서로 다른 것은 그들의 생물학적인 구조의 차이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이 차이에 기초해 각각 달리 겪은 사회적 경험, 즉 생활 속에서 차별화 되어진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나가는 과정에서,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남자아이는 남자로서, 여자아이는 여자로서 살아갈 것을 기대하고 격려한다. 남자는 치마를 입으면 안되고 울면 안되고 항상 씩씩해야 한다. 반면에 여자는 말씨가 거칠면 안되고 폭력적이어서는 안되며 항상 부드러워야 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어릴 때부터 강력한 영향을 미쳐서 평생 그러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세뇌교육을 시킨다. 만약 이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자격에 의심을 받는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성격형성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결혼생활, 자녀양육, 사회활동 등 개인의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현재 사회는 급속히 변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 주부들의 취업이 일반화되었고 전업주부로 아빠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사회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항상 양면성이 존재하듯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도 남성성이나 여성성의 모든 것이 필요하며 적당히 모든 요소를 갖추고 성장할 때,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도 부모들이 기대하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성향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심리학자 산드라 벰(Sandra Bem)이 주장한 바와 같이 앞으로는 남자건 여자건 양성화(兩性化)가 되어야만 효율적인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실제로 요즘 젊은 맞벌이 부부 중에는 남편이 밥짓기 빨래 시장보기까지 하는 경우도 많은데 21세기는 '양성성'이 각광받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많은 부모들은 남자아이는 대범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반대로 여자아이는 아름다움과 내성적인 성격을 선호한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때리고 들어오면 큰일날 것으로 알며, 반대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맞고 들어오면 부모들은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기까지 한다. 여자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 하고 남자아이는 자동차나 로봇을 가지고 놀아야만 한다. 하지만 여자아이들도 대범성과 적극성을 길러줘야하며 남자아이에게도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길러줘야한다. 이러한 양성성을 겸비하고 자라야만 다양성을 강조하는 21세기의 리더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아이가 여장을 하고 여자 흉내를 내면서 ‘자신은 여자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보고 “그래 어떤 성이면 어떠냐”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임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임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이를 ‘성동일성장애’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이 세상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성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제3의 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양성인이 있다. ‘사방지’라 불리는 이 사람들을 흔히 조선시대 성종때 이야기로만 생각하지만 실은 현재도 엄연히 존재한다. 다음으로 위에서 말한 스스로 육체의 성이 바뀌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가리켜 의학적으로 성동일성 장애자라 일컫는다. 예전에는 변태, 성도착증환자 등 정신이상자로만 취급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급속한 뇌과학의 발달로 그 원인이 뇌의 이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뇌의 성차를 나타내는 부분은, 진화적으로 매우 일찍부터 발달한 '구피질', 즉 대뇌 변연계이다. 그리고 이 대뇌 번연계와 대뇌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율신경 기능의 중추로 알려진 시상하부는 뇌의 성차를 결정하는 곳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상하부의 일부인 신경핵은 남녀의 차이를 가장 크게 나타내는 부위이다. 이들은 뇌의 원형은 여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남성의 뇌가 되기 위해서는 이 영역의 신경 회로가 만들어지는 임신 3~7개월경에 대량으로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의 작용이 필요하다. 만일 이 시기에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충분치 않으면 여성의 뇌가 되는 것이다. 또 반대로 불필요하게 많은 남성 호르몬의 세례를 받으면 몸은 여성이어도 남성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일정한 시기에 남성 호르몬의 작용으로 뇌의 일부를 '가공'함으로써 본래 여성이 될 뇌의 원형에서 남성의 뇌가 만들어졌다고 하면, 남성은 여성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주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뇌의 차이라는 생각에 기초해서 정의 내린 것이 성 동일성 장애이다. 즉, 육체적으로는 완전한 남성 또는 여성이면서, 자기 자신을 그 반대의 성으로 확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성 동일성장애는 1차성과 2차성으로 분류된다. 1차성의 사람은 성별 위화감이 철저해서 일관되게 성전환을 희망한다. 확실히 1차성으로 진단 가능한 사람은 남성보다도 여성에게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전환수술까지 한 유명 연예인이 있고 세계적으로도 지금은 그다지 드문 이야기 아니다. 2차성의 사람은 어렸을 때는 성별을 의식하지 않고 자라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성별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성별전환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요구하는 성 역할로 생활할 수 있으면 만족한다. 좋은 예가 언젠가 TV에서 방영된 어느 일본인 가족의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엄마가 되어버렸다. 다 큰 아이들이 둘이나 있는 상황에서 `성동일성 장애`란 진단을 받고 아빠는 여자가 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이런 소식을 들은 아들은 충격을 받아 반년이나 방안에 처박혀 생활하고 본인도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이자 진짜 엄마인 사토미는 “남편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준다면 받아주겠다” 라고 해서 이젠 엄마가 둘인 가족이 되어버렸다.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깨워 학교 보내는 등 엄마 역할을 하는 아빠가 딸과 함께 사이좋게 매니큐어를 바르는 모습은 마치 진짜 엄마와 딸 같다. 성동일성 장애의 치료는 우선 심리치료로부터 시작된다. 심리치료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호르몬 치료가 검토되지만 실시하기 전에 ‘실제 생활 테스트’가 행해진다. 이것은 변환한 성으로의 생활을 실제로 체험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그 성으로서 생활해 보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면도 보이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실제 생활 테스트에서 역시 다른 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만이 호르몬 치료에 들어간다. 이것만으로도 원하는 성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로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 한해서 성전환수술이 검토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의 시선은 냉담하다. 따라서 성동일성 장애자는 육체의 성별과 마음의 성정체성의 불일치에 고통받는 것만이 아니다. 주위 사람과의 부조화나 아이덴티티 그 자체에 대한 불안정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 때문에 등교거부나 섭식장애로 이어지는 비율이 훨씬 높고 우울병이나 자살율도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우선 부모들의 불이해가 원인이 된다. 따라서 많은 성동일성장애자는 결국 부모나 친척들과 관계를 끊고 가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정한 성동일성 장애로 판명되는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다. 아이들이 성의식이나 성열할을 혼란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사춘기 여자아이가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힘겨워 남자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관계가 너무 밀접해 동성애적인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동성동년대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부모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배우고 이성애의 연습까지 해 나가는 것이다. 부모는 일시적인 성역할의 혼란에 일희일비 하지말고 아이가 성 정체성을 잘 확립해 가도록 평상시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가정 내에서 아빠나 엄마로부터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모델을 보고 아이는 자신이 이상으로 하는 동성상이나 이성상을 마음 속에 그리게 된다. 또한 부부로서의 부모는 한쌍의 남녀의 본보기로서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우리 어른들의 성 정체성도 결코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마찰은 반려자인 사람과의 마찰이면서도 실은 이성을 너무 모르는데서 야기되는 이성간의 갈등이기도 하다. 자신의 성의 특성을 모르면서 이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이성을 이해하는 것이 자신의 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진지하게 이성인 자신의 반려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만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발달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부모는 아이의 성 정체성 형성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