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엄마가 불러도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비디오만 보고 있는 아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 TV에 빠져 있는 아이, 컴퓨터 앞에서 입 벌리고 멍하니 앉아 게임에 무아지경인 아이, 언뜻 생각하면 해결책은 간단할 것 같다. 한마디로 모두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게 말같이 쉽지가 않다. 특히 이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컴퓨터게임인데 엄마에게 대항할 힘이 생긴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이상 아이들은 금단증상 때문에 어떻게든 게임을 하려 집에 늦게 들어오고, PC방에 가기 위해 돈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부모와 난투극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들은 속만 끓일 수밖에 없다. 이런 아이들은 나중에 중독증세까지 보이게 되는데 화면을 보든 안보든 항상 비디오나 TV를 켜 놓아야 한다든지, 컴퓨터게임을 하든 안하든 모니터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독성이다. 이들은 만들어 질 때부터 어느 정도 중독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비디오나 TV를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게 만들고 게임을 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매체들이 모두 나쁘고 무익하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들은 이들 매체들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지식이나 사회적 관계를 쌓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얻기도 한다. 또한 TV나 비디오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친구들이 ‘파리의 여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먼 산 바라보고 있다면 분명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할 게 뻔하다. 게임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게임은 요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 우리 엄마나 아빠들이 어린 시절에 공을 차고 고무줄 놀이에 몰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푹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게 문제가 된다고 하는 것일까? 바로 사람과 사람이 하는 대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컴퓨터의 채팅 등을 예로 들어 사람과 사람이 하는 대인커뮤니케이션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컴퓨터라는 매체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다. 즉,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비현실적 의사소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가지 예로 현실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살할 사람들을 모아 같이 자살을 기도하거나 모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된 친구나 친분관계를 쌓아온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즉흥적이고 단순하며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성이나 감정을 가지고 컴퓨터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이 게임할 때 옆에서 조금만 지켜보면 알 수 있다. 혼자서 하는 말들이 거의 욕이며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한마디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언어가 있다는 것이 두 번째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 두가지 특징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다면 다른 동물이나 로봇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놀이에서는 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언어가 있고 감정과 이성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우정을 기르고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TV나 비디오 혹은 컴퓨터게임에 빠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이보다 더 재미있는 놀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밖에서는 친구들과 공을 차고 놀다가도 집에만 들어오면 놀거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TV나 비디오 앞으로 가게 되고 컴퓨터 앞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핵가족화와 맞벌이가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없고 설사 엄마나 아빠가 있다고 해도 모두 제 할 일 하기에 바쁜 세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결국, 아이가 TV나 비디오 그리고 인터넷게임에서 얻는 즐거움을 부모나 형제 자매와 같은 가장 가까운 인간에게서 찾아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람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느낄 때 가상의 세계에 대한 즐거움을 버린다. 남편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운 아내는 TV 드라마에 빠지지 않듯이 가족과 함께 노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은 이들 매체에 빠지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위해서 가족간의 사랑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들을 만들어야 한다. 무슨 특별한 놀이를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알까기’, ‘카드놀이’, ‘풍선배구’ 등등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이렇게 가족놀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아이들은 인터넷이나 TV와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TV나 비디오 그리고 인터넷게임은 요즘 아이들의 가장 즐거운 놀이다. 따라서 무조건 막는다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 다만 무엇이 되었든지 아이 혼자서 하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TV나 비디오를 볼 때는 부모가 옆에서 같이 시청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멋있는 연예인 이야기를 해도 좋고 서로 토론을 벌여도 좋을 것이다. 물론 보고 나서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면 훌륭한 가족놀이가 될 것이다. 인터넷게임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아이가 혼자서만 해야되는 게임이라도 반드시 옆에서 응원을 한다거나 지켜보는 것이 좋다. 그러한 과정 중에 부모-자녀간의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물론 게임을 하기 전에 아이와 반드시 끝낼 시간이나 횟수를 정해야함은 물론이다. 게임은 하면 할수록 빠져들기 마련이며 특히 시간 개념이 없는 어린 아이의 경우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를 사는 부모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이상에 불가할지 모른다. 그래서 부모역할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을 잃고 난 후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 후에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리게 되는 것이다.